근간 읍내에 <임산물유통센터>가 생겼다. 궁금키도 하여 어느 날 홀연히 고무신을 끌고 방문하여 전시품(판매상품)을 둘러보았다. 다량의 상품은 구비해놓지 않으나 이런 저런 다양한 상품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소소한 종류의 다류茶類도 있었다. 잎으로 만든 <잎차葉茶>, 뿌리로 만든 <근차根茶>, 꽃으로 만든 <화차花茶>, 발효액이나 농축액으로 만든 <액상차(液狀茶)> 등이었다. 운영자가 뜻이 있어 다류상품을 좀 더 진열코자 한다면, 분말차, 씨앗차, 열매차 등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꽃차로 본 차문화] 그러고 보면 언제 부터인지 슬며시 차문화가 살아나고 있다. 이렇게 살아나고 있는 차문화는 놀랍게도 그 옛날 고요한 오솔길 같은 녹차문화가 아니다. 문명이 발달한 거리에 각양각색의 색조로 나타난 네온싸인들처럼, 각양각색의 다양한 차들이 거리에 나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녹차처럼 전문화된 것은 별로 없다. 조금 있다면 현대에 이르러 갑자기 두각을 나타낸 액상차, 즉 발효액차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화차(꽃차)]이다. 이 중 ‘꽃차’는 협회까지 결성되고, 자격증까지 등장하는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꽃차의 열풍은 대체로 꽃차의 외관에서 불어왔다. 한 송이 꽃을 찻잔에 떨어뜨려 놓으면 색향色香의 예술이 피어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목욕을 한 호수인가도 싶다. 감성이 둔한 남성들이야 덤덤하게 여길 테지만, 미의 창출을 제일로 여기는 여성에겐 참으로 크나큰 유혹이다. 이 장면으로만 보자면 꽃차의 영원성이 기대된다.
그러나 허니문의 달콤한 관계가 2년을 넘기지 못하듯이 화려한 외관의 심취도 한순간이다. 결국엔 본질로 들어가 내게 정녕 필요한 것인가를 묻게 된다. 그야말로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인 차인가를 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꽃차는 어떤 것인가? 단연코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인 것이 현 실정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꽃차의 생명력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에 등불이 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유행의 축제만을 한 번 펼친 채 사라질 우려가 있는 대목이다.
꽃차건 어떤 차건, 차문화의 경로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이라는 저울질이 필요 없는 차, 기호적 식품이 아닌 차, 내 생활에 있어 습관처럼 일상화된 차, 내 삶에 있어 정말로 소중하고 귀중한 것으로서의 차문화 경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차에 대한 효용성과 효율성을 최대한 밝혀내야 한다. 이는 곧 국가적 정책 및 산업화의 필요성이 제기됨과도 같다.

[영국의 차문화] 세계에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차문화를 가진 국가들이 많다. 그 중 영국을 예로 들어보자.
영국의 차문화는 홍차문화이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적 정책에 의한 국가적 산업화로 이루어져 있다. 당연히 국민적 차문화가 되었으며, 수백 년 동안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일상문화가 되었다.
영국 역시 차문화의 시초에는 상류층이 즐기는 기호식품이요, 사치품이었다. 그러나 점차 매료된 나머지 중국과의 아편전쟁을 치르고, 다른 나라를 침공하면서까지 차의 수입 및 보급에 온 정신을 쏟게 되었다. 그 당시 영국 제국주의는 그야말로 홍차 제국주의였다. 그만큼 영국은 차산업을 중요시 여겼고, 광대하게 했으며, 일상화 시켰다. 그리하여 차제조의 거대기업들이 생겨났고, 박람회나 <티 레이스> 같은 축제의 장이 생겼으며, 티타임 등의 일상적 질서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영국 차문화가 빈부노소를 막론하고 온 국민에게 이렇게 일상화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켰던 음주문화에 대한 반발, 즉 금주운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술을 멀리한 자리에 차가 들어선 셈이었고, 특히 안개의 나라답게 항시 음습한 기후조건에서 차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기운을 충만케 했다. 또한 각 농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티타임을 갖게 함으로써 능률이 배가됨을 알고 티타임을 아예 정례화 시켰다. 이 모든 것들이 복합되어 영국의 차문화는 하나의 민족전통처럼 굳건히 영국인의 삶에 자리 잡은 것이다.
국가가 나서는 일은 이처럼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조선 말기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차문화 쇠퇴도 국가의 <숭유억불정책>이라는 정책 때문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이전 우리나라의 차문화는 사실상 불교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차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거의 대부분 승려들의 차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있는 것만을 보아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 유교가 들면서 불교가 배척되니, 다선일체茶禪一體로 한 잔의 차에 시를 읊고 화두를 던지던 스님들의 여유는 고사하고, 산천 굽이굽이 길을 걸어 차를 보급하던 스님들 수효마저도 급감하니 차의 단절은 거의 필연적이었다.
역사 깊은 녹차문화가 그러했을 진대, 깊이가 미미한 꽃차의 세계는 아예 그 존재마저도 아스라하기만 했다.
조선초기 [대동운부군옥]이라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에 동백꽃차가 소개되어 있기도 하고, 세계적 명저인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무궁화차가 나온다. 조선말기 빙허각 이씨 [규합총서]에 매화차, 국화차 만드는 법이 나와 있기도 하고, 이능화라는 분의 저서인 <조선불교통사>에는 [귤꽃차]라는 꽃차 언급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차들은 책장의 거미줄에 걸린 채 단 한 걸음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꽃차문화는 없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거의 갑작스레 꽃차가 나타나 제법 분명하고 활기찬 꽃차문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 꽃차문화는 현대가 시조始祖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꽃차문화가 갑자기 어디서 불어왔을까? 나는 생각하고 있다. [허브차]의 다리가 놓이자 건너왔다고.
[우리나라 꽃차의 가교, 허브차] 우리나라를 부유케 한 산업혁명은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불과 5, 60년전 일이다. 그 문을 통해 서양문물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왔고, 거기에 [커피]가 있었고, [허브차]가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들어오자마자 자리잡기는 힘든 법. 더더구나 커피의 대단한 각성효과에 밀려 들어와서도 한 구석에 엉거주춤 서있었던 것이 [허브차]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산업혁명의 승가가 울려 퍼지고 부유한 사람들이 생겨났으며, 그동안 고생한 몸과 정신을 챙길 여유도 생겨났다. 그래서 ‘웰빙문화’와 ‘휴休문화’의 바람이 순풍처럼 불어오고, 그 순풍이 [허브차]를 제대로 된 자리로 이끌었다. 이는 불과 20여 년 전에 일인가 싶다.
그런데 [허브차]의 내밀한 속성은 건강에 있고, 허브차의 원조들인 서양인들 의식 또한 그 흐름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사람들의 의식에 들어온 허브차는 다양함과 화려함, 맛과 향에 놓여졌다. 이제는 서서히 서양인들이 건강의식의 흐름에 따라가고 있지만, 최근까지는 최소한 그렇다.
[허브차]는 녹차와는 달리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 식물들의 잎과 꽃을 불문하고 건강에 유익하다면 인정하여 차로 만든 것이다. 당연히 종류가 많다. 종류가 많으니 이런 모양 저런 모양, 이런 색 저런 색, 이런 향 저런 향 등 참으로 화려하다.

내 집 근처에 훌륭한 관광명소가 된 허브식물원 및 허브차 카페가 있다. 허브식물도 구경하고 허브차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촌로가 장화를 신고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는 꼴이 생뚱맞지만, 어쨌든 구경해 보면 첫 인상이 딱 화려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귀비 침실처럼 아름답고 향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절로 호기심이 들고, 절로 한번쯤 마셔보고 싶게 만든다.
특히 우리나라의 [이질풀꽃]과 비슷한 꽃차인 <블루멜로우>라는 허브차는 우리의 동공을 놀란 동공으로 바꾼다. 우리나라 [제비꽃차]나 [도라지꽃차]처럼 뜨거운 붓자마자 블루다이어먼드 같은 파란 물색이 펼쳐진다. 그 아름다움도 신기한데, 거기에 레몬즙을 한 두 방울 떨어뜨리면 이번엔 새색시 연지처럼 고운 다홍색으로 변하는 마법이 펼쳐진다. 여기서 끝나지도 않는다. 한 번 우려먹기가 아쉬워 재탕을 하면, 이번엔 대양의 블루홀 같은 청록색의 눈빛으로 변한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은은한 녹색으로 옅어진다. 때문에 <블루멜로우> 허브차를 ‘색의 마법사’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것은 <블로멜로우>라는 식물이 특별한 식물이어서가 아니다. 모든 종류의 꽃잎이 지닌 색소의 원리일 뿐이다.
꽃의 색은 꽃잎 속의 수용성 색소인 안토시안류와 베타시아닌류, 그리고 불용성 색소인 카로티노이드류 때문에 이루어진다. 안토시안류는 주로 빨강, 연분홍, 보라, 남색을 띄고, 베타시아닌류는 주로 빨강, 파랑, 보라색을 띄며, 카로티노이드류 같은 경우 빨강, 주황, 노랑색을 나타낸다. 이러한 색소들이 없으면 흰꽃이 된다.
여기서 수용성 색소는 산성과 만나면 붉은 색을 변하며, 염기성과 만나면 푸른색으로 변한다. <블루멜로우>에 산성인 레몬즙을 넣으면 붉게 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원리가 있는 만큼, 똑 같은 꽃이라도 토양에 따라 다른 색상의 꽃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산의 서늘한 골짜기마다 [산수국]이 즐비하다. 흰색의 가화(가짜꽃)를 테두리에 두고 중심으로 작디 작은 꽃들이 피어있는 산수국꽃은 꽃색이 짙어지는 경과에 따라 변화기도 하지만, 결국은 어떤 토양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어떤 곳의 산수국은 파란색의 꽃이요, 어떤 곳의 꽃은 분홍색의 꽃으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즉 염기성 토양에서 자란 산수국꽃은 파란색이요, 산성토양에서 자란 산수국꽃은 분홍색인 것이다. 이들이 어울린 [산수국꽃차]의 모습은 아라비안나이트의 양탄처럼 현란하고, 유럽의 궁전처럼 클래식하다.
결국 이러한 화색의 원리를 알고 있으면, 우리나라 꽃 역시 마찬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금방이다. 실제로 [제비꽃차]나 [도라지꽃차] 등도 똑 같은 색의 마법사들이다.
어쨌든 [블루멜로우] 허브차의 색의 마법을 보고 있으면, 절로 현혹되게 마련이다. 그 모습만으로 당장에 꽃차에 대한 깊은 관심이 주어진다. 물론 <블루멜로우> 허브차가 애당초 기관지질환에 좋기에 만들졌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꽃차의 시작 및 현실, 그리고 희망] 앞서 말했듯이 서양에서는 건강의 허브차가 우리나라에서는 외관의 허브차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일류간판, 명품치장에 현혹된 사회상에 있어서 외관이 화려한 꽃차 역시 당연한 듯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화려함으로 고무된 허브차의 의식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꽃에 스며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결국 하나 둘 시험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름답다! 눈으로만 보아도 매력적이고 즐겁다!
나는 우리나라 꽃차의 열풍이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이는 거의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이전의 꽃차 역사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고 나쁜 일은 아니다. 나의 추측이 틀렸고, 어디서 불어왔건 어쨌든 좋은 일이다. 꽃을 눈에 담고 욕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꽃을 입에 머금고 즐겁지 않을 사람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적으로는 하나의 자원의 발견이요, 산업적으로는 한 수익원의 창출이요, 개인적으로는 안정된 건강과 맑고 밝은 정서로의 발돋움이기 때문이다.
다만, 번영과 지속성이 문제이다. 관련 전문가들의 노력과 국가의 관심이 없다면,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인 이 상태로는 결국 유행에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실제로 전문화된 연구도, 전문화된 기업도, 전문화된 판매처나 홍보도 없다. 그냥 우후죽순처럼 나타나 오합지졸 격으로 소통되고 있다. 게중에 어떤 품목이 ‘어디에 좋다‘는 사실이 어느 방송에 뜨면 그때 반짝 요란을 떨게 되지만, 이내 씻은 듯 잊히고 만다. 이것이 우리나라 차 문화의 현실이다.
"차는 심신, 특히 정신세계를 조율하는 약"
덖음차건, 액상차건, 분말, 씨앗, 열매 등의 차건, 우리나라 현대의 차 종류가 대부분 그러한 실정에 놓여있다. 오로지 역사 깊은 녹차만이 그마나 연연히 전문화된 차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약성, 맛, 색, 향 등 식물의 내밀한 성향은 영원히 고유하고, 과학 및 의학 발전은 줄기차게 연구되며 업적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질병과 스트레스로 가득차 어찌 할 바 모르는 현대 사회가 저절로 요구하게 되었다. 차는 심신, 특히 정신세계를 조율하는 약이기에 말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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